누군가 저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얘기 하면, 저는 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추천해주곤 합니다. 이 책은 동생이 집에 사다놓고 안 읽던 책이었는데요, 우연히 심심한 날에 한 번 펼쳐나 볼까 싶어서 봤던 책이에요. 처음에는 책을 펼치자 마자 "이게 무슨 책이야." 싶었어요. 저에게는 약간의 진입장벽이 느껴졌던 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읽다보면 정말 재미있는 책이에요. 이야기의 흐름이 정말 현실성 있고, 누구나 그럴 것 같은 자연스러운 전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틀을 깨뜨리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불편해지면 왠지 다 같이 협동해서 고난을 이겨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책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책에서 나와있는 전개가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이겠지요. 제가 생각했던 건 정말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어요. 저도 모르게 인간은 본래 착하고, 협동하고싶어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인간의 본성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제가 조금 비현실적이었지요. 또, 평소에 나는 편안하게 지나치던 부분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불편한 장벽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배려없는 삶을 살았는지 알게해주는 책이에요. 가독성이 없는 것 조차 우리에게 '눈 먼자들'처럼 불편한 어떤 상황을 체험하게 해주고 그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급기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저를 발견하게 해줘요.
정말 재미있고, 철학적이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저의 사고가 확장 된 느낌이에요.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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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간에, 주인공이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왜 알리지 않고 저 속에 섞이는거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는 내내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습니다.
이미 선이란 것도 없고, 동물적인 본능만이 지배하는 세상. 규정되었던 룰은 이미 모두 파괴되었고, 급기야 강하고 교활하며 잔인한 사람들이 자기멋대로 지어놓은 것이 룰로 되어버린 세상.
이런 곳에서 자신의 '특권'이라고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수탈당할수 밖에 없는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도 저 사람들처럼 교활하고 잔인해야하는데, 주인공은 '눈이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선을 넘어 그들과 같이 잔인함으로 그들을 찍어누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짐승인 상대방에게는 내가 백날 대화하려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짐승은 저의 행동, 몸짓을 보고 나를 추측할 뿐이지요. 주인공은 그런 상황을 간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상황에서 묻어가야 자신이 가장이자 보호자가 된 시점에서 반려자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만 눈을 뜨고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상황. 이것은 주인공에게도 고문이었을 것입니다. 참혹하고 ㅈ같은데 아무말도 못하고 있으니까요. 용감하기엔 저들만큼 잔인할 자신이 없고, 잔인하다 해도 나의 반려자가 다칠 것 같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도 차라리 안보였으면 싶은 시간도 있었겠지요.
사실 요즘에 저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실은 나만 알고있고, 다른사람들은 눈이 안보이는 듯,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극적인 거짓말만 흡수하고 마니까요. 혹은 눈을 뜨고있어도 이내 진실을 들이밀면 눈을 감아버리거나요. 저는 이런 현실에서, 차라리 거짓말이 진짜였으면 싶기도 했습니다. 진실을 나만 안다는것은 특권이 아니라 고문이었습니다. 저를 늘 괴롭히고 답답하게 하고 억울하게 했습니다. 대화로 아무리 이해시켜주려 해도, 1+1 = 2 라고 말해주는 상황에서, 왜 1+1을 해야하는지를 묻는 상대방들을 보고 '멍청한 짐승보다 못한새끼들'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저사람들은 진실을 알고싶은게 아니다. 거짓말을 듣고도 그러려니 한 것이다. 무기력하고 무관심 한 것이다. 라고요.
그러나 저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책에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눈을 뜨게 되고, 전처럼 세상을 보게 되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보여서 어쩔수 없다는 말을 할게 뻔합니다. 억지로 눈을 감았던 사람들도, 마치 그냥 안보여서 어쩔수 없었다는 듯이 정당화를 하고 말것입니다.